디지털자료 현대사 현장 전체 서울 (166) 경기/인천 (64) 강원도 (60) 충청남도 (50) 충청북도 (27) 전라북도 (44) 경상북도 (61) 전라남도 (78) 경상남도 (80) 제주도 (37) 서울166 경기/인천64 강원도60 충청남도50 충청북도27 전라북도44 경상북도61 전라남도78 경상남도80 제주도37 총 "78건" 20개씩 보기 50개씩 보기 100개씩 보기 1950년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전남대학교 의학박물관) 1944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개설된 광주의학전문학교는 광복 이후인 1946년 광주의과대학으로 승격, 1947년 9월 문교부로부터 6년제 의과대학으로 인가받아 광주 서석동, 학동 일대에 캠퍼스를 조성하고 교사를 건축하였다. 본 건물은 1948년에 설계를 하고 착공했지만 6.25전쟁 등 여러 사정으로 인해 1952년 9월에야 완공했다. 그와 동시에 전남대학교가 의과대학을 비롯한 공과대학, 농과대학 등을 아우르는 종합대학이 되면서 대학본부로 사용되었다. 전남대학교의 본부가 북구 용봉동으로 옮겨 가면서 중앙도서관, 의과대학 도서관 등으로 사용되었다. 2012년부터는 전남대학교 의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의 구조는 평면이 ‘L’자형으로 현관을 포함한 중앙부는 3층 규모이며, 콘크리트 슬라브 평지붕 형식이다. 194-50년대 학교 건축물에 주로 썼던 조적조(組積造) 벽돌에 슬라브 바닥 구조를 하고 있다. 국립 전남대학교 개교 이래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면서 대학을 상징하는 역사적 건축물로 의미가 있다. 2018년 8월 등록문화재 제728호로 지정되었다. 1960년대 광주 관덕정 광주 관덕정은 우리나라 전통 기예인 국궁을 연마한 활터이다. 1961년 7월 2일 건립되었다. 광주의 사장(射場)은 조선시대 15세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장의 자리는 광주 도심, 광주 천변, 광주공원 등으로 이전되다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었다. 화천기공 권승관 회장 등의 주선으로 전라남도와 광주시로부터 건축 허가와 지원을 받았다. 건축물의 설계는 김태만이 하였고, 시공은 남화토건이 하였다. 광주 관덕정은 남향의 건물로 사직공원이 바라다보인다. 남북으로 길게 사장이 위치한다. 건물 구조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1960년대 초 다른 사장에서 볼 수 없는 구조이다. 처마 끝부분에서는 한식 지붕의 부연과 같이 서까래 형태를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형상화하였다. 이 구조는 한옥의 부연을 형상화하면서도 구조적으로 보의 구실을 하고 있어 구조적, 조형적으로 세련된 형태이다. 평면은 2칸 규모의 장방형이었다가 좌·우측과 배면부가 확장되었다. 가운데에 홀을 두고 좌·우측에 화장실과 사무실을 배치하였다. 앞쪽에는 사대와 복도가 있다. 좌·우측과 배면 외벽은 시멘트 벽돌과 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앞쪽의 개구부는 가운데 기둥을 중심으로 좌우 각각 6쪽으로 된 전통 형태의 목재문이 설치되었다. 1쪽은 여닫이문이었고 5쪽은 들어열개문이었다. 2008년 수리할 때 알루미늄제로 바꾸었다. 광주 관덕정을 건립한 후 전국대회와 전국체전에 세 차례 사용되었다.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좌·우측과 배면을 넓히고 창호를 바꾸는 등 수리하였지만 전체적인 건물은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광주 관덕정의 관리는 원래 전남궁도협회에서 해오다가 1984년 광주시에 기부체납하였다. 지금은 광주광역시체육회에서 위탁관리하고 있고 광주궁도협회가 운영하고 있다. 광주 관덕정은 국궁장이라는 전통 체육시설에 걸맞게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한국건축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처마 곡선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희귀한 사례이다. 이 같은 건축학적으로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10월 23일 등록문화재 제694호로 등록되었다. 일제강점기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천주교 광주대교구청은 처음에 천주교 광주교구 대건신학교로 1961년 12월 15일 건립되었다. 1985년 3월 1일 광주 가톨릭대학, 1994년에는 광주 가톨릭대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1998년 1월 6일에는 대학이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으로 옮겼다. 1999년 4월 9일 광주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으로 문을 열었다. 2014년 7월 8일에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현재는 광주대교구청의 평생학습, 사무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신도들의 문화, 교육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961년에 본관, 브레디관, 헨리관, 식당동 등 4동 건물이 완공되었다. 모두 호주 출신 신부가 설계하였으며 건축기법도 유사하다. 4동의 건물은 본관을 중심으로 지상층뿐만 아니라 지하층에서도 상호 연결되었으며, 증축된 부분에서도 이들과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모든 건물이 클러스터처럼 연결되며 유기적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구조는 철근콘크리트 구조, 적벽돌 쌓기 외벽, 평지붕을 기본적 건축형식으로 하였다. 전체적으로 수직적, 수평적 구성을 강조하며 단순한 형식의 형태와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헨리관, 식당동, 브레디관은 평지붕 외곽 파라펫[parapet] 내부 안쪽에 수로를 형성하고 슬래브 상부에 물을 공급함으로써 여름철 건물의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 매우 독특한 건축기법을 적용하였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본관은 처음 건립할 때 시설한 배선관 기계시설, 배선을 위한 공간이 원형 그대로 잘 남아 있다. 브레디관은 외벽 창호가 원형이 잘 남아 있어, 모기장, 방범 샷시, 멈추는 장치, 오르내리 창의 철물 따위가 변형 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헨리관은 수평적, 수직적 구성을 강조한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식당동은 여름철 건물의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 건축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이 같은 가치가 인정되어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브레디관은 2017년 4월 20일 등록문화재 제681-1호, 본관과 헨리관, 식당동은 2018년 9월 13일 등록문화재 제681-1호, 제681-3호, 제681-4호로 각각 등록되었다. 1960년대 광주 구동체육관 터 광주 구동체육관은 1965년 7월에 전라남도 광주시 구동에 건립된 실내 종합 체육관이다. 당시 관할하던 전라남도체육회와 관련이 있어 전남체육관이라고도 하였다. 제46회 전국체육대회를 치르기 위해 건립된 구동체육관은 지방 시도에 있는 실내체육관 가운데에서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건립 당시 들어간 비용을 행정당국의 지원과 도민의 모금운동으로 충당했다는 점에서 민관 합작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광주 구동체육관은 지하 1층, 지하 5층 규모에 1,218석을 갖추고 있었다. 운동경기나 체육행사 뿐만 아니라 음악회, 연설회, 공연, 각종 집회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그러나 시설이 낡고 사용 빈도가 줄어들자 광주시에서는 구동체육관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문화시설을 건립해 현재는 빛고을시민문화회관이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기 무등시네마 무등시네마의 역사는 1927년 광주지역에 들어와 살았던 일본인들이 구로세(黑瀨)를 대표로 해 조합 형태로 착공한 ‘광남관’에서 시작된다. 경성의 명동 명치좌(현 명동예술극장) 건물의 형태를 따라서 지었고 야간에만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후 구로세의 단독 체제로 바뀌고 난 후 1930년 ‘제국관’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무등시네마는 광복 이후 적산가옥으로 처리되어 제국관에서 영사기사로 일했던 전기섭이 불하를 받았고 동방극장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했다. 국산 영화상영 의무화 조치가 있었던 1966년까지는 양화전문 상영극장이었으며, 영화상영 이외에도 전국학생연극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여러 차례 소유주 변경 후 1970년부터 무등극장이라는 상호를 사용했고 1990년대에는 멀티플렉스 무등시네마가 되었다. 무등시네마는 지방의 단관극장이 사라지는 가운데에서도 멀티플렉스로 변신하며 향토 영화관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2012년 1월 영화 <완득이>의 상영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일제강점기(1910~1945)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광주 지역의 학생이 주도하여 일으킨 항일 독립 만세 운동이다. 광주에서 폭발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민족 차별 교육에서 발단하여 민족 독립 만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은 1967년에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고 참여한 학생들의 높고 고귀한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개관했다. 원래 건립했던 곳은 동구 황금동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시설이 노후화되어 가고 도심 속에 있어 공간이 좁은 탓으로 2004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새로 지어 개관하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은 기념관, 도서관, 기념탑 등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으며, 기념관은 참배실과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광양 구 진월면사무소 광양 구 진월면사무소는 1956년(단기 4289) 7월 7일 건립하여 광양군 진월면사무소로 썼던 곳이다. 트러스 지붕구조에 상량기록이 있다. 1979년 현재의 면사무소가 신축되면서 이 건축물은 다른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광양 구 진월면사무소는 단층의 소규모 관공서 건축물로서 조적조로 벽체를 구성하고 목조 트러스 구조를 얹은 형태이다. 앞면에 주출입구를 두고 석조처럼 보이도록 하는 조형적인 처리를 통해 주출입구의 무게감을 강조하고 있다. 평면은 건축물의 오른쪽 부분에는 면장 집무실과 부속실, 왼쪽에 민원 업무 공간이 위치하여 주된 출입구는 오른쪽에 위치하는 전형적인 면사무소 평면 형식이다. 이 건물의 특징은 현관 중심 부분의 벽체에 있는데 몸체의 벽으로부터 튀어나와 있다. 튀어나온 벽의 윗부분은 박공 형태로 마무리되었다. 양옆으로는 산형 모습으로 장식이 되어 있다. 윗부분 가운데에는 원형 고리 쇠사슬 모양이 수직적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사슬 장식과 출입문 사이 가운데에는 덴탈(치차)장식이 평아치처럼 되어 있다. 이러한 장식적 수법으로 출입 부분의 정면성을 강조한 점은 근대적 장식 수법으로 가치가 있다. 광양 구 진월면사무소는 1950년대에 건립된 소규모 관공서 건물로 지붕의 목조트러스 구조가 원형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고, 주출입구 부분을 조형적으로 처리한 독특한 입면구성을 보이는 등 지역을 대표하는 근현대건축유산으로서 보존 가치가 충분하다. 2018년 12월 10일 등록문화재 제739호로 등록되었다. 개항~대한제국(1910) 완도 소안면 구 당사도등대 완도 소안면 구 당사도등대는 대한제국 말기인 1909년 1월에 건립되었다. 일본이 조선의 각종 생산물 수탈을 시작하던 시기에 군함과 상선의 항행을 원할하게 하기 위해 설치한 해상항로의 등대시설물이다. 1909년 2월 24일 소안도 출신 이준화와 의병 5명이 간수 4명을 사살하고 주요 시설물을 파괴하는 의거를 일으켰는데, 이는 완도 소안도와 신지도 일원의 항일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당사도등대는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 통신기지로 사용되었으며 당시 공습을 받아 파손된 것을 1947년 복구하였다. 등탑은 윗부분으로 오를수록 지름이 조금씩 줄어드는 원통형이며, 앞면 출입구는 주위를 사각형의 양쪽 기둥과 윗부분 아치에 의해 튀어 나오게 장식하였다. 안은 바닥으로부터 곡면 벽체를 따라서 윗부분의 등롱으로 이어지는 조립식 철제 나선형 계단을 설치하였다. 등롱은 가운데에 등명기를 설치하고 바닥 슬래브의 개구부를 통해 아래 부분 철제 나선형 계단으로 이어진다. 밖에는 원형 평면의 발코니와 난간을 두고 윗부분에는 돔형 지분을 덧대었다. 안개가 낀 날에 사용하던 사이렌용 나팔과 기계식 벽체 구조물들이 일부 남아 있어 당시 시설물 배치 상황을 알 수 있다. 2008년에 제2등대를 신축하여 구 등대는 현재 등재 기능은 없지만, 근대기 등대이며 일본의 수탈을 막기 위한 의거가 발생한 역사적 장소라는 점에서 2018년 10월 등록문화재 제731호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 곡성 성륜사 안심당, 육화당 곡성 성륜사 안심당과 육화당은 스님들이 기거하면서 참선하는 승방이다. 안심당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거나 수행의 체험으로 움직임이 없는 지경에 마음을 머무르게 한다는 뜻이다. 육화당은 입으로, 뜻으로, 계율로, 바른 견해로, 이익으로 화합하라는 육화(六和) 정신을 되새긴다는 뜻이다. 성륜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속 사찰이며 1989년 중창 불사를 하였고 전통 사찰로 등록되어 있다. 곡성 성륜사 안심당과 육화당 처음에 1920년 구례의 자선사업가인 국포 김택균(1872~1945)이 안채와 사랑채로 지어져 주민 구휼과 사회 복지 공간으로 썼다. 원 소재지는 전남 구례군 마산면 냉천마을(냉천리 510-1)이다. 1987년에 아산 조방원(1922∼2014) 화백이 한옥의 원형을 보존하고, 전통 예술의 교육과 창작 시설로 이용하기 위해 옮겼다. 뒤에 조방원화백이 청화대종사에게 기증하여 성륜사 승방이 되었다. 안채는 안심당, 사랑채는 육화당이라 하였다. 안심당과 육화당은 성륜사 경내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一’자형 평면의 안심당과 ‘丁’자형 평면의 육화당이 서로 인접하여 자리하고 있다. 그 앞면으로는 조방원 화백이 한옥을 이축할 때 조성하였던 정원 부지가 남아 있다. 전체적인 배치 형태는 1970년 촬영된 항공사진에서 보이는 이축 이전 국포 고택과 비슷하게 보인다. 안심당은 전체적으로 앞면 6칸, 옆면 3칸의 평면이다. 좌측면에 반칸씩의 퇴칸을 달아내었다. 육화당은 과거 국포고택의 사랑채로 사용된 건물로서 '丁'자형의 특이한 평면구성이다. 곡성 성륜사 안심당, 육화당은 전통 한옥 건축 형식을 기본으로 근대의 시대 상황에 따라 근대 건축기법을 부분적으로 도입하여 한옥의 시대적 변용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근대 남종화의 거장 아산 조방원 화백이 전통예술 교육과 창작을 위한 전승 공간으로 활용한 곳으로 가치가 있다. 건립 당시 사회구제를 한 민가 건물은 옮긴 뒤 문화향수의 예술공간이 되었다가 승방 건물로 용도가 바뀌긴 하지만, 중생 구제를 이념으로 하는 불교의 법리를 실천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7년 12월 5일 등록문화재 제700호로 등록되었다. 일제강점기 보성 안규홍, 박제현 가옥 안규홍(1879~1911)은 보성 출신으로 군대 해산을 계기로 1907년에 의병을 일으키고 의병대장으로 활약한다. 보성을 중심으로 하여 전라남도 남부 지역에서 의병 항쟁을 주도하며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다. 안규홍 집안은 매우 가난하여 유년 시절 어머니와 함께 먼 인척이었던 박중규(1837~1892) 집에 기거하였다. 박중규는 박제현의 부친이다. 열 살 때부터 머슴살이를 시작하여 20년 동안 머슴 노릇을 하다가 의병을 조직하고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한말 의병사에서 머슴 출신으로 일본군에 대항하여 의병을 지휘하고 뛰어난 작전을 펼쳐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는 성과를 올린 공로로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박제현(1871~1934)은 원래 부농으로 안규홍이 머슴살이를 하던 현 가옥의 소유주였다. 안규홍 의병부대 창설 뒤 군량관으로 참여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서훈되었다. 보성 안규홍․박제현 가옥은 대한제국기 호남의병의 대표적 의병장이었던 담산 안규홍이 머슴살이를 하며 20여 년간 살았던 집이다. 그리고 안규홍 의병부대가 1908~1909년 사이에 활약할 때 군용물자를 대주었던 박제현 군량관의 집이기도 하다. 보성 안규홍․박제현 가옥을 지은 해는 안채 대청 종도리 아래 기록된 상량 기록에 ‘숭정기원후오주갑계유추중수(崇禎紀元後五周甲癸酉秋重修)’라 하여 1933년(계유년) 가을에 중수했을을 알 수 있다. 원래 건립은 1872년으로 전한다. 안채, 행랑채, 사랑채, 광채, 사당, 대문채 따위의 건물과 안마당, 행랑마당, 사랑마당 따위의 외부 공간에 의해 구성되는 근대 부농 주택의 공간 구조와 기본적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2019년 현재 행랑채는 없어진 상태이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크기이다. 전체적으로 수장 공간의 확대, 전후퇴의 발달, 툇마루에 의한 각 실의 연결, 대청의 실내 공간화 등 근대기 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성 안규홍․박제현 가옥은 머슴과 주인이 함께 대한제국기 한말 의병의 공적을 인정받은 유일한 사례로서 기거 공간인 가옥으로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12월 5일 등록문화재 제699호로 등록되었다. 일제강점기 목포 정광정혜원 목포 정광정혜원은 1917년 건립된 건물이다. 사찰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본사 백양사 소속이다. 도현화상 공덕비 기록에 따르면 1911년에 일본인 승려 도현화상이 목포에 포교소를 개설했고, 1917년 흥선사로 개창했고, 이때 현 건물을 건립하였다. 광복 뒤 만암 스님이 정광정혜원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목포 정광정혜원은 일본식 사찰 건물로 건립되어 불당과 요사채가 연결되며 한 건물 안에서 복합적으로 구성되는 일본식 사찰 건축형식이다. 불당과 요사채가 장방형 중정을 가운데로 서로 잇대어 있다. 아래쪽은 현관 겸 복도이고 위쪽은 복도인데 서로 연결된다. 건물 안에서 생활 공간과 예불 공간이 복합적으로 배치되는 일본식 사찰 건물의 특이한 공간과 평면을 구성하고 있다. 불당은 밖에서는 앞면 가운데의 주출입구와 코오하이[向拜], 안 공간에서는 안쪽에 장식적 불단이 있는 부쯔마[佛間]가 특징적 요소이다. 정문은 처음 건립할 때 함께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맞배지붕의 일주문 형식이지만 양측 기둥을 혹두기 마감의 단일 석재로 세웠다. 상부 지붕가구는 서까래와 그 하부의 첨차 형식의 부재에 따라 구성된 특이한 형식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일본식 사찰 건물은 목포 정광정혜원과 군산 동국사가 알려져 있다. 특히 목포 정광정혜원은 법당과 요사채가 건물 안에서 복도로 연결된 ‘ㅁ’자형 구조를갖추고 있는 독특한 형식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10월 23일 등록문화재 제696호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 영광 원불교 신흥교당 대각전 영광 원불교 신흥교당 대각전 1936년(圓紀 21)에 초가 5칸으로 건립한 원불교 영광교구 신흥교당의 주법당이다. 영광에서 발흥한 민족종교 원불교의 초기 종교 공간으로서의 건립 이후 현재까지 80여 년을 당초 건립 용도대로 사용하고 있는 근대 종교 시설이다. 이 대각전은 원래 1920년대에 유서가 마련되었는데 신흥마을 주민들이 묘량수신조합(저축조합)으로 시작하였던 공동체 운동 공간이었다. 신흥 마을은 80여 명에 이르는 원불교 성직자를 배출하여 초기 원불교 역사는 물론 향촌사회사와 지역공동체 운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영광 원불교 신흥교당 대각전의 구조는 앞면 5칸 옆면 2칸 크기이다. 내부의 공간을 넓게 사용하기 위해 앞면 4칸을 모두 통칸형으로 처리하였다. 불단을 측면으로 배치한 점이나 굽은 부재 등을 적절히 사용하여 입면상의 조형성을 보여주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외형상으로는 일반적인 초가지붕 민가와 같이 전퇴를 설치하였다. 각 칸에는 모두 두 짝 띠살문을 설치하였다. 우측 한 칸만이 방으로 구성된 점은 민가의 구성 방식과 유사하지만, 내부에서는 기둥을 생략하고 통칸으로 구성하였다. 외형상으로는 민가의 형식을 따르면서 내부 공간을 넓은 예회실로 사용하려는 점은 강당형 종교 시설로서의 계획상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원불교 신흥교당 대각전은 최초 주민공동체로 시작하여 후에 원불교 교당으로 발전한 매운 드문 사례이다. 또한 대각전 건축의 초기 가구 구조와 공간 구성 등 기본적 건축 형식에서 원형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고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10월 23일 등록문화재 제693호로 등록되었다. 2010년대 2012여수세계박람회장 2012여수세계박람회는 2012년 5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93일간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개최된 세계박람회(Expo 2012 Yeosu)이다. 1993년 대전 세계 박람회 이후 두 번째로 치러진 국제박람회기구(BIE)가 인정한 박람회이다. 2012여수세계박람회장은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The Living Ocean and Coast)’ 주제로 여수시 신항 지구 174만㎡에서 열렸다. 전시 구역은 25만㎡이다. 도입 시설은 주시설인 주제관을 비롯하여 국제관, 한국관, 해양생물관, 국제 기구관, 스카이타워, 빅오 따위가 설치되었다. 참가 규모는 105개국과 국제기구 10곳으로 유럽 20개국, 미주 20개국,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31개국, 아프리카 26개국, 중동 6개국 등이었다. 한국관은 한 개의 건물에서 연면적 5,309㎡에 1,800여㎡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주제는 ‘한국인의 바다정신과 해양역량’이었다. 돔 영상과 디오라마를 활용하였다. 국제관은 여수세계박람회의 가장 가운데에 있는 박물관으로 모두 네 개의 건물과 그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 다리를 통해 태평양 공동관, 대서양 공동관, 인도양 공동관과 46개 나라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전시관 D관에는 미국관, 중국관, 일본관 등 주요 나라가 밀집되어 있어 관람객이 많이 몰려들었다. 주제관은 한 개의 건물에서 연면적 6,000㎡에 1,800여㎡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주제는 ‘해양가치와 미래비전’이었다. 퍼포먼스와 학술 행사를 포함한 전시관으로 구성되었다. 해양베스트관이라고도 불렀다. 엑스포디지털갤러리는 국제관의 각 건물을 연결하는 LED 스크린 천장이다. 길이는 218.24m, 너비 30.72m이다. 빅오(Big-O)는 거대한 바다(Big Ocean)에서 유래한 말로 수변의 해양공원이다. 스크린과 해상분수를 이용한 빅오쇼(Big-O Show)가 열린 행사 공간이다. 여수세계박람회는 93일 동안 해양의 미래를 보여주며 820만 명이 관람하였다. 소도시에서 개최된 박람회이지만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국가임을 보여 주었다. 광복~1950년대 함평성당 전라남도 함평군에 위치한 함평성당은 1952년 완공된 광주대교구 소속의 천주교회이다. 원래 1944년 일반 주택을 나주본당 함평공소로 사용하던 것을 1949년 성전 신축공사를 시작했으나 6.25전쟁의 발발로 무산되었다. 전쟁 중에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성당을 소각해 겨우 뼈대만 남은 것을 다시 건립했는데, 1951년 12월 함평을 방문한 교황 사절단이 개축 지원을 약속해 1952년 4월 공사가 시작되었고 10월 13일에 준공 축성 미사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함평성당은 연면적 581.8㎡의 규모에 붉은 벽돌의 2층 건물이다. 1950년대 이전의 성당 건축은 대부분 단층 건물에 높은 천정과 종탑으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함평성당은 1층과 2층의 기능을 분화하여 1층은 교육과 사회적 공간, 2층은 순수한 종교적 공간으로 구성했다는 특징이 있다. 2014년 12월 등록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1960년대 호남정유 여수공장(현 GS칼텍스 여수공장) 1967년 5월 19일 호남정유주식회사로 설립 등기되어 락희화학주식회사와 미국의 칼텍스 석유회사가 합작투자 하여 세운 회사이다. 1967년 3월 여수공장 제1원유정제시설(CDU)을 기공하여 1969년 6월 1일 준공하고 6만 배럴 정제 시설로 탄생했다. 1972년에는 여수공장 제2 원유정제시설(일산 6만 배럴), 1981년에는 여수공장 제3 원유정제시설(일산 15만 배럴)을 준공했다. 1995년부터 2013년까지는 네 차례에 걸쳐 중질유분해시설을 준공했다. 1986년 9월 한국 측의 단독 경영체제가 되었으며, 1996년 LG칼텍스정유로, 2005년에는 GS칼텍스주식회사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1983년 정유업계에서 처음으로 2억달러 수출을 달성했으며, 1997년 업계 최초로 일본과 미국에 휘발유를 수출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정유업계 최초로 250억달러 수출을 달성했다. 이처럼 제2차 경제개발과 함께 국가발전에 힘을 기울였던 시기에 국내 최초의 민간 정유회사로 출범해 석유산업의 새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곳이다. 광복~1950년대 신안 비금도 대동염전 신안 비금도 대동염전은 1948년 450세대 주민들이 염전조합을 결성해 만든 천일염전이다. 설립 당시 100만㎡ 규모로, 폐염된 경기·인천지역의 주안·남동·군자·소래염전을 제외하고는 국내 최대의 염전이었다. 비금도에는 천일염전 기술사 양성소가 세워져 많은 염전기술자를 배출했다. 이들 염전기술자들을 중심으로 ‘수림 염전기술개발조합’이 결성되었다. 이곳에서 활동한 기술자들은 인근 도서 지역의 천일염전 조성공사에 참여해 염전 발전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동염전이 들어 선 뒤에 주변에는 남일염전, 대성염전, 나무섬염전, 중앙염전이 만들어져 대규모 염전지대(530ha)가 형성되었다. 현재 대동염전의 전체 넓이는 453.131㎡으로 저수지(貯水池), 증발지(蒸發池), 결정지(結晶池), 해주(海宙)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지역주민들이 결성하여 만든 염전이라는 점과 국내 염전 발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커 2007년 11월 등록문화재 제362호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 구 장성성당 본당 광주대교구 소속의 천주교회이다. 1937년 재속프란치스코회 회원인 김익진(金益鎭, 프란치스코, 1906-1971)이 기증한 땅에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했으며, 골롬반회의 제라티(B. Geraghty) 초대 주임 신부가 부임하며 장성성당 본당이 설립되었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우즈(F. Woods) 2대 주임 신부가 적성국(敵性國) 국민이라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4년 3월 김창현(金昌鉉) 신부가 부임하자 일본 경찰은 교회 순찰을 수시로 하고 성직자의 행동을 감시하는 등 교회 활동을 방해했다. 또한 성당과 사제관에 강제로 들어와 일본 군대의 창고, 청년들의 훈련소, 군견을 기르는 장소로 용도를 변경해 사용했다. 6.25전쟁 당시 성당은 인민군 북부지구 사령부로 쓰이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 골롬반회 신부가 다시 장성성당 본당에 부임해 폐허가 된 본당을 재건했다. 장성성당 본당은 1966년 성모유치원을 설립해 유아교육을 하기도 했으며, 같은 해 6월에는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해 장성지역의 경제적 협동과 신앙 전파를 꾀했다. 1982년 새로운 성당을 건물을 지은 이후 본당 건물은 2012년까지 성모유치원으로 사용되었다. 2000년대 구례 동편제판소리전수관 전라남도 구례군에 위치한 동편제판소리전수관은 판소리 동편제의 대중화를 위해 2002년에 건립되었다. 판소리는 호남정맥을 중심으로 하여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뉜다. 구례는 동편제 지역으로 송만갑(1865~1939), 유성준(1874~1949), 박봉래(1900~1932), 박봉술(1922~1989)과 같은 명창을 배출했다. 특히 송만갑은 판소리의 대중화를 위해 판소리의 창극화를 시도하고 동편제에 서편제 소리를 가미한 독특한 창법을 개척한 인물이다. 이에 동편제 판소리를 전승 보전하기 위해 송만갑 생가 일대에 동편제판소리전수관을 건립했다. 송만갑의 생가도 함께 복원했으며, 유성준, 박봉래, 박봉술 3인의 명창 추모비 등도 추가로 건립했다. 더불어 판소리 동편제의 정통성을 이어가고자 구례군은 매년 10월 구례동편제소리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1990년대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 고흥군 외나로도에 있는 우주과학 전문 전시관이다. 국가 우주개발 중장기계획(1996~2015)에 따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중심으로 추진된 나로우주센터의 건립은 2003년 건설을 시작해 2009년 6월 11일에 준공하였다. 나로우주센터는 발사체와 인공위성의 최종 조립과 점검, 발사준비와 발사, 비행 상태 데이터 원격측정, 비행안전관리와 통제, 발사기술 관련 계측기술 개발, 발사관련 성능시험, 로켓 엔지 개발시험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나로우주센터는 2013년 나로호 발사에 성공했는데, 이는 2009년 8월부터 두 번에 걸친 발사에 실패하고 열 번의 연기 끝에 이룬 성과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13번째 우주센터 보유국이 되었다. 우주과학관은 나로우주센터에 소속된 시설로, 나로우주센터의 기능을 이해하고 우주과학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체계적으로 전시해 놓았다. 인공위성 전시관, 우주과학 전시관, 로켓 전시관, 야외 전시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제강점기(1910~1945) 구 곡성역사 전라선 보통역으로 1933년 10월 15일 건립되어 1999년까지 사용한 역사이다. 곡성역은 섬진강에서 채취한 모래를 운송하는 것이 주된 기능이었다고 한다. 1999년 2월 25일 전라선 복선화로 곡성역이 신축 이전하면서 폐역이 되었고, 이에 따라 13.2㎞ 구간인 구 곡성역에서 압록역까지도 폐선 되었다. 구 곡성역사는 역사동과 창고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역사와 주변 부지는 곡성군에서 매입하여 레일바이크와 증기기관차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 중이다. 주변에 기차 조형물과 증기기관차 등으로 조성된 ‘심청골 철도공원’이 있으며, 증기기관차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사용되기도 했다. 구 곡성역은 2004년 12월 등록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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